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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택시 인생, 택시는 나의 운명, 나의 힘

2020년 4월호(12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5. 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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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택시 인생, 택시는 나의 운명, 나의

- 조복실 여사의 택시기사 이야기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시작한 택시 운전
당시 제 나이 27살, 남들은 한창 직장생활에, 연애할 꽃다운 나이에, 저는 아이가 다섯이었어요. 20살에 남편을 만나 6년 동안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낳았죠. 남편 집은 깡통만 안 찼지 거지도 그런 거지가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착하긴 했지만 요즘 말로 능력 없는 남편과 만나 사고를 쳐버린 거죠. 결혼도 첫아이를 낳고 2년 뒤에 하고, 그 뒤로 어찌어찌하다 보니 애가 다섯이나 된 것이죠. 줄줄이 태어난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집에서 가정 부업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포장지에 겹겹이 쌓인 물건 때문에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집 꼴이 이게 뭐냐며 성질을 냈고요. 그래서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한 달에 20만 원만 벌 생각으로 유명한 라면회사에 이력서를 들고 시험을 봤어요. 아이들 학자금도 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떨어진 거예요. 떨어질 이유가 없는데… 아마도 주민등록 등본에 아이가 다섯이나 있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남편에게는 떨어지면 죽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왔는데, 너무 속상했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택시를 탔는데, 마침 여자 기사분이 모는 택시였어요. 
어디를 가냐 길래, 아무 곳이나 가 달라고 했죠. 그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면허증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있다고 하니 택시 운전을 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분 말을 믿고 택시회사로 찾아갔죠. 몇 군데 퇴짜를 맞고 찾아간 곳이‘통일교통’이라는 택시회사였어요. 그곳에서 부장님이 저를 보더니“아가씨, 놀리지 말고 썬글라스나 끼고 쇼핑이나 다녀요.”하며 저를 믿지 않더라고요. 택시 경험이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매달렸더니, 그 회사에서 가장 안 좋은 차를 주더라고요.‘포니 원’주황색 택시였죠. 대신 다른 기사 분들 모르게 새벽에 나와 운전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음날 새벽 2시에 똥차, 아니 택시를 몰고 나왔는데, 첫 손님으로 버스 기사 아저씨를 태웠어요. 그 분 왈,“이렇게 예쁜 아가씨에게 똥차를 준단 말이야!”그렇게 다른 기사 분들 몰래, 또 남편 몰래 택시를 몰다가 7일째 되는 날, 집 앞에서 딱 남편에게 걸렸지 뭐예요. 남편은 어디서 창피하게 택시를 모냐며 펄펄 뛰었지만, 어떻게 해요? 뭐든지 해야 했으니 택시를 계속 몰았죠.

여성이라 더욱 힘들었던 택시운전
아이들을 챙기고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야간근무를 주로 뛰었어요. 이런저런 손님들에 못 볼 것 참 많이 보았죠. 특별히 여자가 택시를 몰아서 그런지, 얕잡아 보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한번은 젊은 연인이 택시를 탔는데, 뒷 자석에서 뽀뽀를 하고 난리를 떨었죠. 목적지에 도착해 여자 친구를 내려주고, 젊은 남자는 다시 차에 올라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도착해“택시비가 오천 칠백 원 입니다.”하니, 저를 빤히 쳐다보다 문을 열고 냅다 도망가는 거예요. 그 순간 돈을 못 받았다는 것 보다, 저런 남자친구를 둔 그 젊은 여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야간에 일을 하다 보면, 술 취한 손님들을 많이 만나요. 어떤 술 취한 아저씨는 목적지에 도착해 차비를 달라고 하니, 갑자기 밖으로 나가 돌덩어리를 들고 내리치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보고 돈 달라고 했다고요. 또 어떤 남자 손님은 자기랑 노래방에 가서 놀면 돈을 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했어요. 이밖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과 가정이었죠.

택시를 그만두다
그럼에도 한동안 택시를 그만두고 우울증까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어떤 여자 손님을 태웠는데, 분명 택시에 탈 때 남자친구가 택시비를 주는 것을 보았거든요. 여자는 특이하게 그 돈을 양말 속에 넣더라고요.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해 택시비를 달라고 하니, 돈이 없다는 거예요. 아까 남자분이 차비 주지 않았냐고 하니까, 없다면 없지 무슨 말이 많냐며 시비가 붙었어요. 급기야 그 딸 같은 여자에게 머리채를 잡혀 휘둘리게 되었죠. 화가 나서 문을 열고 나가,“너 나와!”하니까, 갑자기 그 여자가 쓰러지면서 죽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그 일로 경찰차가 출동하고, 파출소까지 가게 되었죠.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여러 번 그런 식으로 돈을 뜯은 지능범이었어요. 처벌을 원하냐는 경찰 말에, 그냥 용서해주라고 하고 파출서를 나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내가 왜 딸 같은 아이한테 이런 일까지 당해야 하나, 너무 서러웠죠.

택시는 내 인생
장사도 해보고, 공장에서도 일하고, 식당에서도 일해 봤지만, 택시 운전이 저에게 딱 맞는 것 같아요. 택시를 그만두고 나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골골댔는데, 다시 택시를 운전하니까 금새 좋아지더라고요. 활동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택시를 모는 게 너무 보람 있고 즐거워요. 집에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왠지 우울한데, 밖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내 일을 한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보통 기사분들은 차비를 더 받으려고 하는데, 저는 얼마 정도 깎아드려요. 그러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요.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보이면, 일부러 그 앞에 가까이 차를 대어 태우죠. 다른 택시들은 싹 지나갈 때가 많잖아요?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분들과 대화하며 관계하는 게 저에게 큰 힘과 기쁨이 되고 있죠. 마음이 기쁘니까 돈도 더 잘 벌리는 것 같고요.

특별했던 손님
어떤 학생이 택시를 타고 안양역까지 갔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을 두고 온 거예요. 미안하다며 계좌로 보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학생이 전철비도 없겠다 싶어, 계좌번호 대신에 차비를 쥐어 보냈죠. 그리고 택시를 몰다 잡지에 실린 적도 있었어요. 광명시 하안동에서 손님을 모셨는데,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와 보호자 할머니였죠. 한약방까지 태워드렸는데, 건물 2층으로 올라가셔야 하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 제가 할아버지를 업고 2층까지 모셔다드렸는데, 마침 기자분의 눈에 띄어 인터뷰까지 하게 된 거죠.

제 또래의 여성분들에게
지금 제 나이가 60대 초반인데, 내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것도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택시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것이요. 제 또래 여성분들을 보면 손주들 키우기에 바쁘고, 고스톱 치고 놀러 다니며, 수다 떨며 지내는 게 대부분이죠.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 쉽잖아요? 물론 늦은 나이에 자신의 일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뭔가를 시작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돕는 봉사활동 같은 것도 좋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어머니
며느리가 저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 존경합니다.”부끄럽기도 하지만, 혼자서 얼마나 힘들게 다섯 아이를 길러낸 걸 잘 알기 때문이겠죠. 아이들이 모이면 하는 말이, 우리 집이 정말 가난했다는 거예요. 여자아이 넷이 옷을 돌려가며 입었거든요. 하지만 덕분에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고, 모두 다 사회 생활을 잘하고 있죠. 엄마가 사회에 나가 열심히 살았던 것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
남들은 자식들도 다 커서 독립했고, 생활도 안정되었으니 이제는 저를 위해 돈을 쓰며 살라고 해요. 하지만 가난한 가운데 아끼고 살아와서 그런지 저에게 돈을 쓰는 게 아까워요. 오히려 100세 시대에 외롭게 사시는 주변 분들을 도우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저의 꿈이랍니다.

 

안양시 석수2동 조복실
010-5045-8788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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