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긴 긴 나라 ‘칠레’(4)

2020년 4월호(12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5. 16. 15:41

본문

[세계속의 한국인]

긴 긴 나라 ‘칠레’(4)

“다녀본 나라 중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칠레였습니다.” 왕년 세계여행 전문가 김찬삼씨와 유럽의 유명한 세계여행 전문가는 공통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쪽 끝 ‘아리까’라는 도시에서 남쪽 끝 ‘뿌에르또 윌리암쓰’까지 4000km인 고추 모양으로 생긴 나라 칠레는 남극에도 영토가 있어 이곳까지 합치면 무려 6000km에 달하는 가늘고 긴 나라입니다. 지구본에서 본다면 영토가 같은 경도에 늘어서 있기에 시간은 같은 시간을 쓰나, 남북으로 자연환경과 날씨, 사람 사는 풍습이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 보면 같은 나라 칠레인데도 외국에 여행을 간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이참에 명소 두 곳 소개하기
북쪽엔 ‘싼 뻬드로 데 아따까마’(SAN PEDRO DE ATACAMA,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라는 사막이 있는데, 처음엔 보잘것없던 몹쓸 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 사람들의 눈에 흡사 화성 같다 하여 서서히 알려졌는데 급기야 이제는 유명한 명소가 되었습니다. 어처구니없이 낮은 지붕, 토담, 말도 못 하게 비싼 식수, 12시나 넘어서 가게 문을 열고 그 사이에 씨에스따(낮잠)까지 즐기며 밤 12시까지 여는 영업형태 등 불편하면서도 이상스러운 매력이 있어 몹시도 이국적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남쪽 끝엔 ‘또레스 델 빠이네’(TORRES DEL PAINE, 직역하면 파란 탑들. 세 개의 거대한 돌산으로 햇빛이 비치는 시간에 따라 돌산의 색이 변함. 특히 파랗게 변할 때 압권이기에 파란 탑들이라 불리며, 인디언들이 지었을 것으로 추정됨)라는 국립공원이 있는데 건강한 사람들은 걸어서 일주해보시길 권합니다.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워 한때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들이 투표한 ‘세계에서 사진 찍기 가장 멋진 곳 ’2위로 뽑혔을 정도입니다. 1위는 노르웨이의 피요르드 해안이지요. 대개 순위는 매년 바뀌지만, 참고로 말씀드립죠.


지겨운 국민성을 가진 칠레인들
처음 도착하고부터 약 18년간 칠레인들을 지켜본 소감은 정말 ‘지겨운 국민성’이었습니다. 굳이 좋게 표현하자면 자기밖에 모릅니다. 조금만 아파도 결근, 아이가 운다고 결근, 동네 이웃과 자기 엄마가 싸움이 나서 말리느라 결근, 비가 많이 와 결근, 자기 아들 딸이 다니는 학교가 휴교라 같이 놀아준다고 결근… 등등 28년 전 고국을 떠났을 당시의 한국 상황보다도 못한 칠레인들의 직장 생활 태도 때문에 환멸이 아니들 수 없었습니다. 물론 교민으로서 그것도 상인의 입장으로만 살아왔기에 더 나은 칠레인들의 풍속을 보지 못한 탓이겠지요. 그래서 ‘가스떼쟈노’(스페인의 까스떼쟈노 지역의 방언을 쓴다하여 특별히 칠레 말을 지칭할 때 ‘까스떼쟈노-CASTELLANO-’라 함)에 능통한 2세들에게 물어보면 내가 바라본 칠레 사람들의 성격보다 더 못하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 이들과 섞여서 살기가 쉽진 않겠죠?(웃음)


20년 살고 보니 달리 보이는 칠레인들
사람이 위기를 맞고 사경을 헤맨 후 살아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6년 전 아내가 암으로 생활고에 시달린 사건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한차례 대형 교통사고와 한 번의 자전거 사고(40분간 기절), 그것도 모자랐는지 지붕에 매달려 도는 대형선풍기의 날개에 머리를 쳐맞는 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칠레인들이 정말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삼 년 전부터 칠레인들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많은 왕래를 가졌고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않은 결론이 나오는 거 있죠?

 

칠레 멜기세덱 문구점 직원들과 함께

결론이라 함은?
따지고 보니 이들의 조상이 유럽인이었습니다. 미국의 인디언 마냥 칠레에도 ‘마푸체’라는 인디오가 있었지만 소수로 남아 있고, 스페인 사람들이 마푸체족과 혼혈 정책을 썼으니 혼혈 민족으로 반쪽 유럽혈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우스갯 소릴 섞어 칠레인들이 사는 모습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게으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람들이 무덥지만 만고 땡인 나라 칠레에 와서 돈 없이 살다 보니 이 모양으로 사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파티 석상에 나타나는 이들의 품격은 죄다 백작의 후손이요(정말 다들 귀티가 남), 배가 고파도 절대 음식을 탐하지 않는 절제가 남다르더군요. 그러니까 이중적인 모습으로 한 면은 지독한 개인주의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다른 한 면은 격조 높은 선조 유럽 문화가 공존하는 희한한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걸 아는 데 20년 걸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전선 이야기
제1(사라 아빠), 제2(원단 가게 사장), 제3(송영규), 제4(이종필)의 귀인에 이어 제5의 귀인이 나타나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제5의 귀인은 이종필 씨가 소개해 줘 알게 되었는데 어릴 때 피아노를 마음껏 쳐보고 싶었다는 꿈을 가진 여사장(김희균)으로 이종필 씨가 저를 소개할 때 독일에서 음악 공부 했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도와주기로 작정하셨던 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5의 귀인의 남편(차윤상)은 12살이나 더 많이 잡수셨지만 친구처럼 대해주어 정신적으로 칠레 생활을 이겨나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셨지요.
 아무튼 칠레에서 20년, 여기까지 오는데 환란이 없었을 리가 있겠나요? 남들은 1년 만에 영주권을 따는데 반해 우리는 무려 7년이나 걸려 따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눈총을 받았습니다. 또한 2008년~2012년 사이엔 죽지 못해 살 만큼 장사가 안 되어 버티느라 고생이 말도 못 했습니다. 


정말 마무리
그런 와중에도 딸, 아들이 무사히 잘 커 주었고, 딸은 올해 1월에 결혼까지 해서 무척 흐뭇합니다. 칠레인 신랑을 맞이하여 덕분에 칠레에 대해 더욱 많이 알 수 있게 되어 참 좋습니다. 지금 칠레는 데모 중인데 하필 3월인 학기 시작 즈음에 너무나도 강력하게 해서 고민스럽습니다. 3월 장사가 평월의 5배 매상을 기록하는 문구점 장사를 하는 바람에 말입니다. 칠레 ‘삐녜라’대통령이 앞으로 2주간 학교를 문 닫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라 함. 아무래도 데모와도 관련이 있을 듯) 장사는 둘째 치고 평화가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빌어보면서, 그동안 4회에 걸친 ‘긴 긴 나라 칠레’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스런 딸과 칠레 사위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