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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도전? 어쨌든 도전!

2020년 4월호(12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5. 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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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도전? 어쨌든 도전!

 

 

2015년 첫 출산 후, 인생의 밑바닥 감정에서 허우적거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진급을 앞두었던 시기의 결혼과 곧바로 이어진 임신, 그리고 변경된 업무에서도 고성과를 입증하기 위한 애씀과 출산 후 몸조리 실패로 찾아온 산후풍까지. 이렇게 1~2년 사이에 정신없이 일어난 일들로, 저는 심리적으로 갈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왜, 맨날 아이 옆에서 이렇게 우울한가?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던 그 때,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인 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젖먹이 아이를 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는데 도움이 되는 교육과 강연들을 찾아다니며 발버둥치기 시작했죠. 바로 그 때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절박해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요. 지금도 저는 저를 100% 다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팀 페리스의 저서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의 내용 중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인생의 25%는 자신을 찾아내는 데 써라. 남은 75%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라. ’팀 페리스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은 나를 알아가고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발자취
저의 첫 도전은 마약과도 같은 연봉과 성과급, 그리고 이름만 대도 알만한 회사의 간판을 달아주는 대기업이었던 첫 직장을 퇴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엔지니어로 우주복처럼 생긴 하얀 방진복을 입고 생산라인의 장비를 만지기도 하고, 생산 공정을 관리하며 불량을 분석하는 일을 했었죠. 그런데 조직문화와 미래의 제 비전을 보니 먹구름이 낀 것 같았습니다.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울 자신은 없었기에 빨리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려고 입사 6개월도 안되었던 햇병아리 시절, 퇴사하겠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꺼냈지만, 결국 그곳에서 3년 가까운 시간을 몸 바쳐 일하다가 중견 제조기업의 엔지니어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의 도전은 계속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7년차쯤 되었을 때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항상 제조업 비즈니스의 뒷 단계에서만 일을 하다, 사업의 앞부분을 관리하고 기획할 수 있는 일을 맡게 되니 처음엔 설레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훨씬 컸었죠. 

마케팅에 대해 독학으로 공부하고 AMA PCM(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 Professional Certified Marketer)이라는 국제 마케팅 자격증도 획득하고 보니, 경영이라는 분야가 너무나 재미있었고, 마케팅 실무에 비주얼한 디자인영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미적 재능을 언젠가는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 이참에 공부해보고 싶은 열망이 불끈 생겨났죠. 
마침 디자인경영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원을 찾아 지원을 했더니 덜컥 합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딸이 있는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일과 육아, 가사, 학업 이 네 가지를 한 번에 잘해낼 자신이 눈꼽 만큼도 없었습니다. 결국은 일을 포기하고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가정이 있는, 특히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저의 그런 선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요. 하지만 생각 외로 회사 동료들은 부러움과 격려, 응원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런 저의 결정을 지지해준 남편이 새삼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 진학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미친 선택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대학원 운영방식의 허술함과 교수와 강의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함에 몸서리를 쳐야했지요. 엄청난 등록금을 갈취했음에도 학생들이 받아야 하는 대우와 학습 환경은 경악할 정도로 수준 이하였습니다. 그나마 전공 관련 강의와 프로젝트를 통해 직, 간접적인 경험을 넓힌 것이 대학원에서 얻은 소득이었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하나, 현실적인 걱정부터 해야 했습니다.
전부터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스마트한 사람들과 즐겁게 협업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졸업을 앞두고 스타트업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온라인 교육업이라는 분야의 고객 경험 매니저로서 말이죠. 사용자 경험과 관련된 논문을 쓰다 보니 지속적으로 ‘사람, 고객, 경험’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어느 책에서 본‘스스로를 가장 취약한 부분에 내몰아봐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낸 것이죠. 비록 그 곳에서 오래 일하진 않았지만, 비즈니스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엄청난 기회였어요. 고객 접점에서 일하며, 고객의 니즈를 직접 듣게 되고, 웹사이트 상세페이지 디자인 기획, 사이트 백단 기획, 프로세스 정립, 이벤트 기획 등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Who am I?
저는 도전을 즐길 만큼 대인배는 아닙니다. 도전을 할 때마다 항상 두려움에 떨었죠.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더 크게 작용한 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해서 용기지, 사실은 주어진 환경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할 만큼 참을성이 부족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요즘말로 ‘유리 멘탈’이었던 거죠. 하지만 2015년부터 생존을 위한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고수해오던 좌우명인 ‘진인사대천명’에 차츰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는 말을 인생의 모토로 삼다보니, 그저 환경에 수긍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에 맞게 행동하고, 주변을 바꾸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의 도전에 박차를 가했던 것은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궁금한 것들을 참지 못하고 알아야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작은 성취를 이루는 그 과정을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그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계속 변화를 시도했던 것 같아요.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심리적으로 가장 힘든 부분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부유하지 못했기에 유독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거든요.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것, 시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것, 내 뜻을 응원해줌으로써 남편이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제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았죠. 실제 감당해야 할 몫보다 스스로에게 더 많은 심리적 짐을 지우는 성격 때문에, 더 이른 나이에 할 수 있었던 도전들도 뒤늦게 시도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약간의 보상 심리랄까요? 그동안 희생했으니 잠깐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갈망이었던 것 같아요.


도전의 이면(異面)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면 사실은 매번 후회라는 감정이 뒤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하나를 택함과 동시에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로망과 환상을 가지곤 하죠. 지금의 이 길보다는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사실 그러한 상상은 현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죠. 그것만 인지하면 그렇게 후회하거나 비교 불가능한 기회비용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도전을 하면서 잃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가장 최근의 시도인 대학원 진학은 슬프게도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았던 도전이었죠. 그걸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실패를 인정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돈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할지, 내 삶을 위해 돈을 포기할지 고민하다 제 신념에 따라 선택을 해왔기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생각보다 가치 있는 것들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을 모두 경험하며 비즈니스와 조직운영에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게 참 많습니다. 한마디로 사업 전체 구조를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죠.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로 남을 수 있었지만, 탈출하여 넓은 세상을 경험한 것 자체는 인생 전반을 볼 때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며 인생에 정말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도와준 사람들을 만난 것도 저에겐 엄청난 행운이었죠. 도전은 곧 변화이기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 또한 점점 터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삶의 본질은 결국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계기였죠. 무엇보다 도전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저는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고 있답니다. 남이 정해놓은 성공과 행복의 평가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관점으로 삶을 살아갈 때 훨씬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미래의 나는?
저는 제가 쌓아온 경험들이 결코 어딘가로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안에 분명히 내재되어 있고, 다양한 경험의 연결이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을 돕는 목적으로, 그동안 제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 노하우와 지혜를 나누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앞으로 있을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해야 할 때면, ‘Life Designeer’(라이프 디자이니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장 5분 뒤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이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한치 앞도 정확히 내다볼 수 없지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관찰하고, 읽어내고, 생각하고, 설계하고, 그려내며 살고 싶거든요. 이런 삶의 방식도 하나의 도전인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처음엔 어설프게 어쩌다 도전을 시작했지만, 그러다보니 어쨌든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네요. 늘 두려움이 앞서지만, 결국 두려움이 곧 도전이겠죠. 일관성 없이 새롭게 여러 분야에 도전을 시도했는데, 반대로 일관성 있게 꾸준히 도전하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렵니다. 앞으로도 두려움을 벗 삼아 제가 원하는 삶을 향해 도전하고 싶어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에요.

Life Designeer, 경험수집잡화점 GK(목표 관리자) 주수연

brunch.co.kr/@lifedesigneer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6>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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