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사 이야기 35]
요즘 뽕나무의 열매 오디가 맛나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며 따먹어 보았는데요. 뽕나무가 가정경제와 국가경제에 크게 이바지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뽕을 먹고 자라는 누에나방을 집단서식(?)시켜 비단이라는 귀한 실을 얻어 냈지요. 비단이 사용된 기록은 춘추전국시절 중국 주나라의 무왕이었다고 하니 2천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기는 합니다만, 그 이전부터 누군가에 의해 비단이 직조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비단이 옷감으로 이용되었을까요?
중국 진나라 때 편찬한《삼국지》에는 ‘마한조에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서 옷을 해 입었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삼한 이전부터 비단을 직조했을 거라 유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비단은 영어 이름인 실크로 더 많이 불리고 있습니다만, 비단은 지금도 귀한 옷감인데 예전에는 더 귀한 옷감이었습니다. 그래서 ‘금포’(錦袍)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신라 박혁거세(기원전 40년)는 직접 마을을 돌면서 뽕나무심기를 권유했으며 백성들에게 비단 직조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고 합니다. 그때도 비단은 국가와 가정경제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던가 봅니다.
조선시대에는 의복으로 품위를 높이려는 신흥귀족들의 비단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산을 늘려야 했지요. 그래서 강제로 뽕나무를 심어 누에치기를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비단이 오늘날 반도체와 같이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 위상을 높이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조선시대 왕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세종인데요. 애민사상이 투철했던 왕으로서 백성들의 가정경제에 보탬을 주려는 노력을 뽕나무심기 권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종은 서울 잠원동에 누에치기 전문기관인 ‘잠실’을 설치합니다. 강남은 누에로부터 시작된 거죠. 뿐만 아니라 궁궐 안에도 뽕나무를 심어 왕비로 하여금 직접 뽕나무를 관리하고 누에치기를 관리토록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누에치기는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농가의 중요 수입원이 되고 있습니다.
뽕나무는 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관목 혹은 교목입니다.《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의 생가에는 ‘누상각’이라는 뽕나무 교목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창덕궁 후원에도 왕비가 심은 뽕나무가 교목으로 자라 천연기념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전 세계에 30여종이나 되는 대부분의 뽕나무가 아열대 지방이 원산지지만 ‘산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합니다. 뽕나무의 껍질(상피)과 열매(오디)는 한약으로 쓰고 뽕나무에 자생하는 겨우살이와 상황버섯은 매우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요즘 들어서 뽕잎을 첨가한 제품들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지요.
‘나무 한그루의 쓰임도 저토록 유익하게 쓰일진대 나는 저 나무만큼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었을까?’ 뽕나무를 보며 쓰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인, 숲해설사 장병연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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