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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나지 않는 책방

2020년 7월호(12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9. 6.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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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 나지 않는 책방

 

 책방을 열고 싶습니다. 종이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고, 그나마 책을 구입하기보다 도서관에 가서 대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요즘 같은 때, 이런 꿈을 꾸는 스스로가 어리석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꿈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윤이 나지 않는 책방을 굳이 표방하지 않아도 이윤이 날 수 없는 게 서점 운영이지요. 주변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말리는 일을 나는 왜 하고 싶을까요?

 《사기열전》을 읽었을 때입니다. 그는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사라질 뻔했던 영웅들을 붓으로 살려냅니다. 진시황 시해를 도모했으나 미수에 그쳤던 형가조차 영웅입니다. 사마천은 말합니다. 공자가 안회를 높이 쳐주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가 그를 알았겠냐고. 자신은 기록을 통해 초야에 묻힌 영웅들을 알리는 일이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갑남을녀도 자세히 살피면 영웅 못지않게 빛납니다. 나도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하여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책방을 열고 싶은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책을 매개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게 가능한 소통의 장! 혼자서 만끽하기에는 너무 좋아서 남에게 전도하고 싶은 그 절실한 마음! 그것이 내가 책방을 열고 싶은 근원입니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건축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빨간 3층 벽돌집입니다. 지하의 음악실이 돋보이고, 아들 방의 노천탕이 인상적인 주택이었습니다. 집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용도는 북카페와 북스테이에 걸 맞는 단층집이라고 전했습니다. 얼마의 예산을 준비해놓았냐는 말에 쭈뼛쭈뼛 30평이니 1억5천에서 2억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대표님이 우리 쪽으로 기울였던 몸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로 등을 기댑니다. 그 정도의 금액이라면 컨테이너를 알아보는 게 빠르다고 했습니다. 
 우리 말고도 집을 지으려는 또 다른 무리가 마당에서 기다립니다. ‘잘못 찾아왔구나?’ 싶은 마음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지요. 차에 올라타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사놓은 부지로 향했습니다. 
‘다시 집중해보자. 무엇이 우리를 좌절시키는지.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책방을 열기로 했으면 나의 규모에 맞게 감당 가능한 집을 지으면 된다. 이곳에 마련한 부지는 일확천금으로 갑자기 번 돈이 아니다. 무려 이십 년 동안 기다려서 만든 돈이다’스스로에게 재확인시키듯 속삭였습니다. 

 요즘은 생각조차 남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뉴스를 듣고 시사평론을 듣는 시대입니다. 자신이 주인공임을 자주 잊습니다. 책을 읽으면 다릅니다. 오감을 활용해 저자와 대화해야 집중할 수 있습니다. 속도가 돈이고 곧 실력인 시대에 속도를 줄이고 자기 자신에게로 파고들 수 있는 힘을 책방에서 기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문화사랑방을 열어서 동네 신문도 만들고, 공정여행 기획도 하고, 연극도 올리고, 마을의 주민 하나하나를 불러서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인생이야기를 펼치게 초청하고 싶습니다. 일생을 두고 꿈꾸는 일이 있음에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일을 두고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한다고 물러설 수 없습니다.
 
 김훈은 중년의 아침을 ‘대략 난감하다’고 했지요. 김훈처럼 유명한 사람도 난감한 중년을 보내는데, 피가 펄펄 끓는 중년의 아침을 선사하는 ‘책방 프로젝트’는 이미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지요?

 

경기도 의정부시 발곡고등학교 교사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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