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원한 섬나라 일본에서 ‘외국인’이 아닌 ‘나’로 살아가기

2020년 7월호(12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9. 13. 19:50

본문

영원한 섬나라 일본에서 ‘외국인’이 아닌
‘나’로 살아가기

 

안녕하세요(곤니찌와). 저는 5살 때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인 새아버지, 러시아인 엄마, 그 사이에서 태어난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엄마의 재혼으로 시작된 일본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면 계속 까끌까끌한 옷을 입고 있는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학교에서 일본식 교육도 받고, 일본직장도 다니고 있음에도 말이지요. 제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일본과 러시아의 문화 차이 
일본과 러시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언어와 연관된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러시아어로 대화하거나 가끔 외할머니가 계신 러시아를 가서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새삼 생각하게 되는데 러시아어에는 군더더기 없어요. 예를 들어, 일본은 상점에서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지나치게 높이는 경어와 반대로 자신을 심하게 낮추어 부르는 겸양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에 그냥 나는 음료 하나만 샀을 뿐인데도, “물건을 따로따로 포장할까요?”, “봉지가 더 필요할까요?”, “계산했다는 스티커를 물건에 붙일까요?” 등등 많은 질문이 붙어옵니다. 그래서 이 길어지는 질문의 늪에 빠지기 전에 선수 쳐서 “다 필요 없어요. 전 이 음료만.”이라고 먼저 말하죠. 내가 필요하면 알아서 말할 텐데… 상대방을 지나치게 배려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 불편할 때가 있어요.
대신 러시아에서는 고객이 먼저 요구사항을 말해요.“전 이것이 필요해요”라고 하면 상점 직원은 그때 해주고 딱 필요한 말만 하죠. 어쩌면 대답이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고객을 무시한다거나 배려하지 않는다는 기분은 들지 않아요. 늘 사실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판매자, 소비자가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하고 상대에게 굽신거리지 않아요. 그에 반해 일본 사회는 모두가 대등한 관계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회의할 때에도 상사가 “이건 안 돼!”라고 하면 모두가 동조하며 상황은 종료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 속에서는‘어? 왜 모두 같은 생각이야? 다른 의견 없어?’라고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아~ 나는 러시아인이구나’라고 생각을 하죠.


외국인이라는 꼬리표
지금 생각해보면, 초·중·고를 다니며 이지메를 계속 당했던 것 같습니다. 5살 때부터 엄마와 함께 방과 후에는 모델 일을 했는데 저에게는 그 일이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다나타상 대단하다”, “뭐든지 다 잘한다. 어린 나이에” 등등 칭찬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때는 네 명의 친구들과 친해졌는데, 좋은 친구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솔직하게 제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친구들이 아무런 사건도 없었는데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것처럼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예요.‘내가 모델을 해서? 솔직한 성격 때문에? 아니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인가?’생각해 보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친구들의 태도가 왜 그렇게 갑자기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아이들의 시기, 질투라고 생각도 되지만, 친구들은“대단하다 너는 완벽한 사람”이라며 늘 칭찬을 해주었으니, 도통 그 친구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진심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상대를 향해서 단점이라도 솔직하게 말을 해요. 누군가 “넌 이건 못하잖아”하면, “그래 난 그것 못해”라며 말하고 그걸 수치라고 여기지 않고 사실이니 인정하는 문화에요. 또 직설적으로 말하다 보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상대의 속내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영업팀에서 일할 때에 고객이 저에게 일을 잘한다며 한 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어요. 저는 신나서 저의 성과를 선배에게 말했지요. 그런데 선배가 저에게 “넌 그걸 믿냐?” 100%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고객과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지메를 당한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지요.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상냥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다른 민족들과의 교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일본에서 살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부분이라 직장 동료에게 물어보니 “일본은 계속 섬나라였으니까”라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지요. 20년을 넘게 일본에서 살았는데 저는 그저 아직도 외국인일 뿐이라니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어요.


일본 우물에서 벗어나기
지금까지 저는 엄마 말대로 움직이는 딸이었어요. 물론 엄마는 여기가 외국이기에 저를 엄하게 키우려고 “이것 해라, 저것 해라”라고 하셨을 거예요. 엄마 말에 순종해서 모델 일도 하고, 대학도 가고, 보너스도 좋고 월급과 복지생활(월세 보조 등)이 아주 빵빵한 회사에 입사했지요. 하지만 저는 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무엇을 할 때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기분이었거든요. 원래의 저는 창의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일본 교육을 받은지라 뒤에서 누군가가 “너 이사해”, “너 회사 바꿔”, “이것 선택해”라고 말해 줄 사람을 찾고, 그렇게 해줄 누군가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을 하고, 부모님과 상의 없이 갑갑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를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결정해주고, 거기에 의지하며 살았던 과거를 벗어나서 이제는 조금씩 제 자신을 알아가고 싶어요. 또 저를 외국인이 아닌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사람들과의 우정도 만들어 가며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바뀌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도쿄에서 다나타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9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