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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또다른 자전거 여행

2020년 11월호(13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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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또다른 자전거 여행

 

10년전 독일
2020년 동해안

10년 전, 두 번째 창업 준비로 한창 바쁠 때에, 그리고 아직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이었습니다. 멘토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공동체 후배 한 명과 4개월 가량의 유럽횡단 자전거 여행을 갔었습니다. 
평생을 비즈니스 출장 외에는 가본 적이 없던 유럽을 차가 아닌 자전거로 도시 곳곳을 누볐지만, 단순히 먹고,보고,찍고,쇼핑하는 일반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컨셉의 여행을 기획하였었지요. 핵심은 유럽의 현지인들과 만나서 대화하는 가운데 그들과 함께 나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색다른 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10여 년 전이라 지금보다 훨씬 용감했나 봅니다. 걸음마 수준으로 타던 자전거를 기본기만 익힌 후에, 자전거 앞,뒤,좌,우,핸들,안장에 가방을 무려 6개씩이나 주렁주렁 매달고서, 그 먼 타국의 고생길을 겁도 없이 선뜻 떠났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사서 고생한 덕분에 우리와 너무나 다른 유럽인들과 직접 대화하고 사귀는 가운데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지요. 또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넓지만 나는 정반대로 얼마나 속이 좁은 사람인가를 깨달아가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자전거가 아니라 쓩하고 지나가버리는 자동차였다면 그렇게나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주렁주렁 짐을 달고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캠핑장에서 저 캠핑장으로 페달링하는 다리는 늘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항상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에 피로를 잊었던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한 명이 아닌 10 여명의 공동체 멤버와 함께 라이딩한 자전거 여행은 이전 경험과는 색다른 것이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한 장소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또 다른 장소로 물흐르듯 떠나야했던 이전 여행이었다면, 이번에는 언제라도 비빌 심리적 여유가 있는, 조그만 나라 한국의 동해안 자전거 종주코스를 미리 정해 놓은 터라, 마음 놓고 달리는 기쁨이 색달랐습니다. 또 언덕 몇 개 넘으면 금세 지쳐서 길바닥이 안방인양 철푸덕 앉아서는 일어나길 거부했던 저질체력으로 하는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체계적으로 충분한 사전 훈련을 거친 후에 동해안의 험난한 고개길도 자전거로 거뜬히 오를 수 있을 만큼의 체력도 빵빵하게 준비한 여행이었죠. 그리고 모든 짐을 스스로 책임져야했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엔 써포트 카(보급차량)도 동행했기 때문에 각 개인이 휴대하거나 자전거에 장착해야하는 짐들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낙타등 같은 고개길 천국인 동해안 종주 자전거 길을 즐겁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낯선 이들과 만국 공용어인 영어로 서로의 관심사를 찾아가며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적잖은 언어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여행 외의 내면적 도전이었지요. 이번에는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하는 가운데 스트레스 제로인 상태, 그리고 서로에게 매우 익숙한 공동체 멤버들과 대화하면서 가는 여정이라 동해안의 환상적인 풍경속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며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엔 독일 남부 퓌센에서 시작하여, 로만틱 가도를 따라 도시를 옮겨가며 여행하였고, 캠핑장에서 숙박하고 도착하는 곳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귀었지요. 그때 캠핑장에서 만난 네덜란드와 독일 청년들, 그리고 까탈스러웠던 독일의 ‘오마’(할머니)의 얼굴은 결코 잊혀지지 않네요. 지금도 그들과 나눈 대화가 생생하거든요. 그렇지만 이번 고국에서의 라이딩에서도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저녁식사 후에 늘 동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삼아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경청했던 대화들은 제 기억 속에 더 화려한 풍광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이번 라이딩에서 저에게 가장 좋았던 점은 하루의 라이딩 분량을 다 소화하고 나서 각자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다 같은 길을 같은 시간대에 통과하며 라이딩한 것임에도, 각자가 독특하게 겪거나 체험한 것들이 오감과 뇌를 거치면서 제각각 형형색색의 경험으로 화려하게 다시 피어났지요. 동해안에서 경험한 환상적인 장면이 같다고 할지라도 누구는 짙은 회색으로, 또 누구는 황금빛 색깔로 묘사하기도 했지요. 거기에다 성별과 나이마저 달랐기 때문에 이 경험들이 각자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와 가치에 반영된 것을 서로 경청하는 가운데 서로를 많이 배워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여정이 점점 더해 갈수록 허벅지만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나누는 우리의 생애의 깊이도 깊어져갔지요. ‘홀로 있어서 넘어졌을 때에 도와 일으킬 자 없는 자는 화로다’라는 종교적 교훈이 생각났습니다. 국토종주 자전거여행을 더 재미있게 가는 팁을 드릴까요? 혼자보단 여럿이, 특히 공동체로 대화의 페달링을 열심히 저어보는 겁니다. 

 

(주)바딧 CSO 추광재

Caleb@bodit.co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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