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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산골 농부

2020년 11월호(13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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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산골 농부

 

 9월 26일부터 9월 30일까지 울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자전거 종주!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제게는 두가지 상반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골을 떠나 탁 트인 해안도로를 달리며 보고, 생각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이 하나라면, 정반대로 농한기 외에는 자리를 비우기가 사실상 힘든 농부로서 가지는 엄청난 부담감이 또 하나였습니다. 실제로‘4박5일 자전거 여행 다녀와요! 제 재배사 잘 좀 들여다봐 주세요!’라는 순간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농부님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니까요. 왜냐면 농한기가 없이 연중 생산하는 농부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자식같은 작물을 버려둔다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지요.


 균열
 이런 기대감과 부담감 반반을 가지고 달렸던 삼척에서 통일전망대까지의 과정은 ‘동공지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환경에 따라 춤을 추며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주는 파도가 저의 동공에 파열을 일으켰다고나 할까요. 사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 외에는, 간혹 다가오는 태풍 등의 영향으로 한 번 요동치는 것 외에는, 늘 고정적이고 정적인 산골 환경에 익숙한 것이 태백산맥 서편의 강원도 농부입니다. 물론 식물들의 작은 변화들에 예민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끊임없이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와 강력하게 부딪히는 태백산맥 동편의 파도들은, 어느 순간 잠잠함에 익숙한 산골 농부의 시각 뿐 아니라 삶의 패턴에 커다란 균열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정적인 것을 넘어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처럼,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강력한 삶의 파동들을 일으키는 그런 농부가 되어보자라는 생각도 했답니다.

 


 대화
 동해안 자전거 도로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코스였던 것 같습니다. 많은 고개들, 구불거리는 도로, 태풍으로 인해 파손된 곳, 너울성 파도로 인해 도로까지 침범하는 포말 등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코스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시간은 이런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들었답니다. 특별히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스무살의 여학생부터 60대 중반의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이루어진 11명의 팀원들과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호흡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60대 어르신을 호위하다가 도로에 파인 구멍을 보지 못해 ‘공중제비’를 한 아찔한 경험도 있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상황 상황마다 말과 행동으로 서로 돕고 돕는 과정들도 그렇고, 쉴 때마다 달리며 생각했던 것들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들은 혼자 달리는 사람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것들이었지요.  


 새로운 꿈
 짧으면서도 길었던 자전거 훈련을 마치면서 가지게 된 많은 꿈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게는 자전거를 타고 유럽의 광할한 들판을 관통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답니다. 또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닌 같은 마을에서 오로지 농사만 짓고 있는, 쉼을 알지 못하는 농부들과 1박 2일이라도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그것도 안되면 함께 대화하는 시간들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평창 산골도로에서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청소년 녀석들과 동해안 일주를 해 봐야겠다는 꿈도 꾸어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전거를 넘어 이제는 하늘과 바다가 끝없이 만나는 곳으로 ‘요트’를 타고 항해해 보는 꿈도 꾸어 보았구요.  

 

강원도 평창 상상농부 한상기

01sangsang@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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