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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찌든 편집 디자이너가 자전거 대장정을 떠나자 눈뜬 자연의 색채

2020년 11월호(13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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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찌든 편집 디자이너가 

자전거 대장정을 떠나자 눈뜬 자연의 색채

 

 

 경북 울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5박 6일의 자전거 대장정을 떠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타는 것과 체력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7월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공동체 멤버들과 자전거 훈련을 위해 고군분투 하였지요.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뭐 고군분투라는 군사 용어까지 나와야 하는가 하시겠지만, 야근이 잦은 편집 디자이너로 일을 하며 300km를 달리는 자전거 여행 준비는 그만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월간지 편집 디자이너로, 마감일에 쫓겨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일을 하고, 4~5시간 취침을 한 후 벌떡 일어나 다음날 새벽에 자전거 훈련을 할 때가 많았지요. 피곤에 찌든 일주일을 보낸 디자이너에서 300km의 대장정을 떠나야 하는 전사가 되는 순간이죠. 하지만, 잠이 부족한 저는 삐그덕, 흔들흔들, 앞 사람을 따라가기에도 바빴습니다. 한 번은 산본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산본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다녀오는데 피곤함에 엉덩이가 아파오는 것입니다. 에라~ 엉덩이가 아파서 포기해야겠다 싶었죠. 그러나 멤버 중 한 명이 저에게 친절함을 베풀어 푹신한 자전거 안장으로 바꾸어 주어서, 무탈하게 끝까지 돌아오기도 했었습니다.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함께하는 동료들과 일렬로 행진하는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었으며, 언덕을 오르면서 나 자신과의 씨름 후에 만나는 뿌듯함, 땀 흘리며 나눠먹는 간식은 더욱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3개월의 자전거 훈련의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은 나도 모르게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300km를 달리는 자전거 대장정의 하루 전날, 여전히 작업에 쫓겨 일을 하는데 컴퓨터까지 말썽을 피우며 멈추는 일이 일어났죠. 결국 밤 12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팀원들에게 피곤해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의 소리들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개월의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서 부딪혀 보자는 뚝심을 가지고 자전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은 울진에서 삼척으로 언덕을 4개 넘어야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에 긴장감이 밀려오기도 했지요. 하지만 언덕 앞에 서서 포기하지 않고 맞서서 넘었던 순간은 정말 뿌듯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순간, 언덕과 같은 어려운 일이 올지라도 포기 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다짐의 시간이었죠. 둘째 날은 삼척에서 동해로 달렸고, 셋째 날은 동해에서 양양까지 달렸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허벅지며 팔과 손이 아파왔지만, 이상하게도 체력은 오히려 살아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울 속의 시끌벅적하고 빠른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고요하고 여유 있는 가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익은 벼들은 짙은 청노랑의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단풍은 붉은 물결의 그라데이션으로, 하늘은 선명한 푸르름으로, 가을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은 투명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다양한 컬러를 이용하여 작업을 하던 제가, 드디어 컴퓨터 속의 컬러가 아닌 원본 자연의 컬러를 만나는 시간이었고요. 저는 어느덧 찌든 디자이너의 옷을 벗어 던지고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과 하나되어 넓고 푸르른 하늘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함께 하는 동료들과 언덕 오르기 경쟁을 하며, 언덕에 오른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에너지바를 하나 더 먹으려는 어린아이와 같았던 시간을 뇌와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아닌, 삶의 치열한 현장 속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다시 마감일에 쫓기는 디자이너의 일상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컴퓨터의 인공적인 색이 아닌, 하늘이 주신 원본의 색을 마음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려 합니다. 낑낑대며 언덕을 올랐던 그 마음으로 현장 속에서 내 인생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보렵니다. 

 

편집디자이너 신동숙

sds0369@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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