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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자기사 목간

2021년 3월호(13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3. 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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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2]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
자기사 목간

 

역사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고대사를 알기 위해《삼국사기》와《삼국유사》는 필수적이지요. 그러나 이 책들은 12세기와 13세기에 찬술되어, 기원 전후부터 7세기에 걸치는 삼국 당대의 역사를 얼마만큼 잘 전하고 있는지는 항상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보완해 주는 것이 당대인들이 남긴 문자자료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돌이나 금속에 새긴 금석문이지만 실용적인 필요성에서 더 많이 사용했던 것은 나무에 글을 남긴 목간(木簡)입니다.

 

 

능사에서 출토된 자기사 목간 [사진 부여박물관]

 


근래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세운 능사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많은 목간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들 목간들은 주로 성왕과 창왕(위덕왕) 때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목간에는 “오랜 세월 인연의 업을 맺어 같이 같은 곳에 태어났으니 서로 시비를 물을 것인가? 宿世結業 同生一處 是非相問(숙세결업 동생일처 시비상문)”라고 적은 것도 있고, “4월 7일 보희사에서 소금 1석을 보내다 四月七日 寶憙寺 送塩一石(4월7일 보희사 송염일석)”라고 적은 것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주목을 끄는 목간은 창왕 때 만들어진 ‘자기사’(子基寺)목간입니다. 어느 해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인근 절에서 성왕의 능 옆에 있는 능사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내왔습니다. 보희사에서는 소금을 보내왔지요. 자기사에서도 무언가를 보냈을 것 같은데 목간에는 절 이름만 새겨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절 이름이 특이합니다. 직역하면 ‘아들의 터가 되는 절’인데, 아마도 왕실의 죽은 아들, 곧 창왕의 왕자를 위해서 지은 절 같습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 옆에 있었던 절로 이곳에서 백제금동대향로도 출토되었다.

 


죽은 왕자는 창왕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성왕의 손자이기도 합니다.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했을 때 손자가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들 창이 30세였으므로 성왕의 손자가 있었어도 아주 어렸을 것입니다. 성왕은 관산성에서 전사하여 능사에 영혼이 머물고, 성왕의 손자는 어려서 죽어 자기사에 영혼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유명을 달리한 할아버지와 손자의 두 영혼이 초파일에 능사에서 만났지요. 자기사에서 보낸 선물은 손자의 영혼이 들고 왔고, 그 선물을 능사에 머물고 있는 할아버지의 영혼이 받았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핵가족이라 할아버지와 손주가 만날 기회가 적어 정붙이기도 어렵지만 저는 어릴 적 방학 때마다 할아버지 댁에서 줄곧 지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애틋합니다. 걸어갈 때 뒷짐을 지는 습관은 외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생긴 습관입니다. 예전에 외할아버지 묘를 이장할 때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유골을 씻기도 했는데, 유골 씻은 바가지를 집에 가지고 가겠다고 했더니 외숙모가 무섭지 않냐고 묻더군요. 저는 그 바가지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고 마치 할아버지 유품처럼 생각되어 집에 가져와 책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자기사’란 목간을 보기 바랍니다. 세 글자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숨겨진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답니다.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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