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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유감, 우리가 그때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2021년 4월호(13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4. 8.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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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유감, 
우리가 그때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TV와 모바일 속엔 각종 광고가 넘쳐납니다. 텍스트나 영상을 보려면 교묘하게 따라붙는 광고로 인해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상품을 알리고 기능을 어필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자 필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등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나오며, 멋진 남성과 여성 모델이 기용됩니다. 저항이 덜하고 친근하며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TV 광고나 지면 광고는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으로 상품의 내용을 자세하게 다룰 수가 없습니다. 함축적으로 제품을 설명해야만 합니다.

 

광고를 이해하려면 현대 PR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즈를 주목해야 하고, 그가 제작했던 광고를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929년 3월 1일 부활절 아침, 뉴욕 맨해튼 5번가에는 사교계에서 유명한 여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버네이즈의 구상과 섭외에 의해 셀럽 여성들이 집결한 것입니다. 여성도 남성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당당하게 흡연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였습니다. 뉴스거리에 굶주리던 기자들은 너도나도 모여들어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여성의 손에 쥐어진 담배가 갑자기 자유의 상징으로 둔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진보적인 여성 단체들은 주최 측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미국의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모진 투쟁을 통해 투표권을 획득한 것이 불과 10여 년 전인 1920년인데, 이번 행사는 여성해방이나 평등권 실현이란 미명 하에, 여성을 들러리 세우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에 부여한 상징 (자유의 횃불)은 매스컴을 타고 여성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이 메인 스트리트를 걸으며 당당히 피워내는 연기가 멋지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시장의 한계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미국 담배 산업이 쾌재를 부르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메리칸 토바코사는 러키 스트라이크란 브랜드로 새로운 고객층을 창출해냈습니다. 담배가 남성만의 전유물이란 인식을 뛰어넘어 여성이라는 새로운 고객층의 공략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청소년에게도 저항의 빗장을 풀어놓았습니다. 매혹적인 슬로우건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달콤한 것 대신에 러키를 찾으세요. 오래된 편견 하나를 없앴습니다.


의료전문가의 입을 동원한 카피는 더 가관입니다.


식사를 바르게 끝내는 방법은 과일, 커피 그리고 담배 한 개비다.
담배는 구강 내부를 살균하는 효과를 가지며 신경을 진정시킨다.


훗날 1960년에 들어 버네이즈는 지난날 자신이 제작한 담배 광고에 대해 후회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때는 담배의 폐해를 미처 몰랐었다고 말합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의 건강을 피폐하게 만든 후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입니다.


기업은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광고의 헤드 카피를 내 아기를 위하여로 뽑았습니다.


가정에서 사용하던 가습기는 물때가 끼어 구석구석 청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가습기에 붓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깨끗해지고 살균은 물론 좋은 향을 내뿜는 제품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 개발이라는 문구에서는 자부심마저 풍겼습니다. 내 귀한 자녀를 위한 제품이란 문구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바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짧은 영상 광고와 제한된 지면의 그 어디에도 제품의 원료와 성분의 안전성에 관한 내용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기업이 만든 제품이니 당연히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매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인 어느 날 사람들은 호흡이 가쁘고 몸이 시들며 폐가 굳어갔습니다. 이상 증상을 보인 사람들은 바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이었고, 역학조사의 결과 인체에 치명적 해를 끼치는 물질이 다름 아닌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제품 안전성에 관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허위임이 판명되었고 제품의 허가도 공업용으로 난 것이지 식품 의약품의 안전성을 통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료는 여러 회사로 공급되어 경쟁적인 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광고를 믿고 기업을 신뢰해서 선택한 제품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평생을 고통으로 신음하게 만들었습니다.


라돈 침대 사태는, 2018년 5월 3일 한 방송사가 대진침대에 들어간 음이온 파우더에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는 보도에서 시작됩니다. 보도에 의하면 대진침대에 함유된 음이온 파우더에는 환경부가 정한 실내 공기 라돈 기준(1m3당 200Bq)의 3배가 넘는 620 베크렐(Bq)의 라돈이 검출됐다고 알렸습니다. 편안한 잠을 원해서 침대와 매트리스를 산 것뿐인데, 그것이 1급 발암물질을 뿜어내는 제품이란 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느냐 말입니까. 저희 집에서도 의심 하지 않고 사용했던 침대가 그 회사에서 만든 침대였던지라 이를 비닐에 싸서 반품하고 그 대체품을 다시 받느라 불필요한 수고와 맘고생으로 속을 끓였습니다.

 

우리가 만일 지금처럼 현명하다면 그때 그 광고만을 보고, 주저 없이 그런 제품을 선택했을까요? 물론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친환경 농산물과 제품이 우리 몸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양이 많은 것에 먼저 손이 갑니다. 좋은 것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몸을 돌보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서 병원비로 돈을 더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버전업 된 핸드폰이 출시됐습니다. 추가된 기능과 빨라진 속도 8k 카메라의 화질을 자랑합니다. 아직도 불편한 예전 폰을 사용하십니까?


‘아니 불과 몇 개월 전에 아랫 단계의 폰을 출시하면서 그때도 당시 최고의 성능과 속도를 운운했는데 이젠 그 제품이 구형이니 바꾸라고? 사용자는 뭐 늘 새 제품을 사줘야 하는 봉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최고의 브랜드는 그 상품을 사용해야 사람이 빛난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야 차별된다고. 그렇지만 빛나는 사람은 어떤 제품을 입어도 맵시가 납니다. 어느 상표의 옷과 신발을 입고 신었는지가 중요치 않습니다. 차라고 뭐 크게 다르겠습니까? 내가 제품을 소비하고 향유하는 주체인지, 브랜드를 소비해주는 기업들의 소비재인지, 소모해주기 위해 뼈 빠지게 일에만 중독되는 존재는 아닌지 헷갈립니다.


담배로 잃은 건강 인삼으로 회복하자는 문구 앞에서 또 망설이지만 우리의 삶과 재화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말고 살아야겠습니다.   

 

기획자 프로듀서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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