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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희망을 표현하는 파랑새 작가 ‘박인옥’을 만나다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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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시대의 희망을 표현하는
 파랑새 작가 ‘박인옥’을 만나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와 함께하는 둥근 소망 2018. 혼합재료. 50호(115x115cm)

 

청소년기, 세 가지의 꿈
저는 청소년 시기에 첫째는 변호사, 둘째는 교수, 셋째는 수녀가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요즘 말로 다 계획이 있었던 거죠.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건 어린 마음에도 누군가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누명을 벗겨줄 사람이 변호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교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스스로 계속 연구하고 공부를 하니 발전이 있을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최고의 직업이 아닐까 했습니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초등학교 때 성당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무릎에 상처라도 나면 수녀님이 금방 달려와 빨간약을 발라주셨어요. 그 따뜻함과 배려를 보고 그리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45년째 전혀 다른 화가의 길을 걷고 있어요.


인생을 결정한 중요한 날
17세, 고1이 되면서 6남매 중 막내인 저는 위로 3명의 언니 오빠들이 미술대학을 다녔던 터라, 시험이 끝나거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집에 마련된 화실에서 언제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5~6시간 그림을 그리는데 무척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밥 먹는 것조차도 잊어버렸죠. 어머니가 저녁을 먹으라며 내려오라 하셨는데 저는 비장하게 “어머니! 오늘은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날이기에 한 끼의 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어머니는 “뭔지는 몰라도 밥 먹고 결정하면 안 되겠냐?”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날부터 미술대학에 가기로 작정하고 큰언니로부터 입시를 위한 데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큰언니는 저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주었죠.

 

찰리 채플린과 파랑새 2019. 꼴라쥬 실크스크린. 65x53cm

 

어머니의 손재주를 물려받다 
저희 친정어머님은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잘하셨어요. 서예도 잘하셨고, 옷도 손수 만드시고 요리는 말할 것도 없었죠. 고등학교 영어교사셨던 아버지께서는 6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대형서점과 검인정 교과서 일을 같이 하셨어요. 서점에 점원이 제법 많았는데, 어머니는 그 대식구들을 위해 늘 많은 반찬을 만들어 대접하셨죠. 낮에 반찬 만드느라 분주했던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늦은 저녁이면 신문을 읽어주시고, 어떤 때는 소설책을 읽어주셨어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 저는 일부러 여러 번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 속의 화가를 꿈꾸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저는, 열화당 문고에서 나온 화가들의 책들을 하루에 몇 권씩 쉼 없이 읽었어요. 책을 통해 누구나 좋아하는 고흐 등 유럽 화가들의 작품과 삶을 알아가며, 어린 나이였지만 세계 속의 화가가 되리라 생각하고 서양화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독일 유학에 오르다
대학 때 윤동주 시인과 같은 시기,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10대에 일본 유학길에 오르셨던 아버지는 교육열이 강해 자녀들에게도 유학의 길을 권하셨습니다. 저 역시 제대로 된 작품을 하려면 나만의 철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1985년 한국에서 대학졸업 후, 독일서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빌레펠트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공부도 공부였지만 기차, 박물관, 전시회관람 비용이 모두 무료인 독일의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혜택 덕분에 쾰른과 베를린,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수없이 관람할 수 있었죠.

힘든 과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다
독일에서 공부하며 그동안 익혔던 모든 기교를 내려놓고,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교수님은 많은 과제를 내주셨는데, 그 중 경마장에 가서 달리는 말을 몇 초 안에 그려오라, 술집에 가서 술 취한 사람의 표정을 그려 와라, 축구장에 가서 골인하는 장면을 그려오라는 과제가 있었어요. 문제는 이 세 곳이 제가 가지 않는, 저의 형편으로는 갈 수 없는 장소였던 것이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평소 성경책을 가까이했던 저는 성경 속에 나오는 이미지를 제 나름대로 그려 무작정 교수님께 보여 드리며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 저는 가난한 유학생으로 경마장, 축구장, 술집에 갈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책 읽는 것은 돈이 들지 않으니 성경 속에서 감동 받은 내용을 이렇게 그려 왔습니다.” 그랬더니 교수님은 “조그만 아시아인이 내가 내주지도 않은 숙제를 독자적으로 해 왔구나!” 하시며 받아 주셨습니다. 이후, 성경이야기를 주제로 졸업 작품을 준비할 때는 “네가 표현하는 예수가 참 독특하다… 인옥은 앞으로 계속 예수를 여러 각도에서 표현해 그려도 좋겠다.”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독일지역신문에 실리다
유학 시절, 석사 졸업 작품으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인간들의 고뇌의 모습과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이라는 긴 주제의 목판화 25점을 출품했습니다. 거의 개인전 수준의 많은 작품이었죠. ‘성경 이야기를 해도 될까?’,‘이런 주제로 졸업을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꾸준히 준비해 출품했습니다. 졸업 전시회가 무사히 끝나고 기숙사에서 모처럼의 늦잠을 자고 있는데,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건너편 방 학생들이었는데, 신문에 제 기사가 났다면서 흥분해 있었죠. 그래픽, 패션디자인, 회화 등 각각의 분야에서 세 명의 졸업 작품을 뽑아 지역신문에 소개하는데 제 작품이 선정된 것이었죠.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자신을 갖게 되었고, 루오처럼 성경적 이미지를 계속 표현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다
젊었을 때는 고흐를 무척 좋아해 흉내를 내보기도 했지만, 점차 표현주의 화가인 에밀 놀데(Emil Nolde)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놀데의 유화, 수채화, 판화는 현대독일회화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공상, 대담하게 생략되는 형태,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원초적 자연뿐 아니라 신앙의 세계까지 과감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석사 논문도 놀데에 관해 쓰게 되었죠. 독일에서 5년 가까이 아르바이트했던 가정이 놀데의 친척이라 더욱 친근하기도 했고요. 콜비츠는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비극적 사회주의적 테마의 연작을 발표한 독일의 대표적 판화가입니다. 그의 작품을 대하며 ‘이것이 바로 민중미술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판화를 공부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양치기 소년 2015. 혼합재료. 20호(72x60cm)


화폭에 주로 담는 대상
주로 성경적 이미지를 그리지만, 자연을 주제로 캔버스에 담아내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하얀 새만 그렸는데, 새는 하얗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파랑새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수필집《희망을 노래하는 파랑새이고 싶어라》(2013, 북랩)를 통해 파랑새가 희망을 상징함을 말하고 싶었고, 그림으로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쁨과 슬픔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파랑새를 빌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죠. 또 서정적인 주제를 담아 <달빛이 주는 위로>, <달동네에서 바라본 커다란 보름달과 희망>, 
<두루미가 듣는 힐링의 노래> 등을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담아 <엄마의 마음-코소보 사태를 떠올리며>, <찰리 채플린과 파랑새>, <돌아온 세월호 천사>, <진도 팽목항>등 사회적인 주제들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 블루와 화이트, 희망과 거룩함을 상징 
제가 주로 사용하는 컬러가 블루 앤 화이트이다 보니, 어떤 분은 물감 살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냐며 농담을 하기도 하시죠. 대학 다닐 때는 정말로 물감 살 돈이 없어 좋아하는 블루와 화이트 계통 물감을 주로 사긴 했죠. 지금은 물감 살 돈은 있지요.(웃음) 무엇보다 제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이 ‘희망’인데, 그것을 저는 블루로 표현했습니다. 어떤 분은 제 작품 속에 푸른색이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푸른색을 담고 있다며, ‘인옥 블루’라고 명해주기도 했어요. 화이트는 어떤 평론가가 깨끗함, 거룩함, 성스러움을 표현한다고 말해주었는데,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림에 마침표를 찍을 때 가장 행복
45년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캔버스에서 어느 시점에 손을 떼야 할지, 아님 계속 그려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먼저 그림에 사인을 해버리는데, 더 이상은 그리지 않겠다는 뜻이죠. 물론 그 후 수정할 부분이 있을 때도 있지만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욕심을 내어 덧붙인 것이 군더더기나 필요 없는 부연설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하게 그리면 더 좋은 작품이 되는데 더 표현하려다 보니 그림이 제대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시점에 중단하고 사인을 할지 그 지점을 잘 찾아야 하죠. 이렇게 해서 사인을 할 때면 해산의 고통을 이겨낸 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초대전이 기쁜 이유
결혼 후, 남편은 경제적인 부분은 자기가 감당할 테니 저에게는 그림에만 집중하라 했습니다. 그런 남편이 고마웠지만, 쉬지 않고 개인전을 하니 재정적 부담이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40세부터는 개인전 비용만큼은 제가 담당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림 판매 수익금은 작지만 소아암환자, 아프리카의 조그만 학교, 고아원, 그리고 오지에서 고생하는 선교사들에게 기부하고 있습니다. 제 그림에서 전하고 싶은 ‘희망’을 스스로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전시대여료 없고 초대전입니다”라고 하면, 저에게는 정말 기쁜 선물이 되는 것이죠.

 

 

화가로 살아가는 의미
다시 태어난다 해도 화가라는 직업을 선택할 겁니다. 화가는 제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몸이 아프다가도 작품에 몰두하면 오히려 병원에 가는 것보다 상태가 더 좋아지는 것 같거든요.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소리를 내지만, 그림은 소리 없이 조용히 색채와 주제를 가지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소리 없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화가가 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을 꿈꾸며
세상에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저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과 감동을 주고 좀 더 힐링 되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가족인 두 딸과 남편에게도 좋은 의미로 다가가는 작품이길 바라고요. 젊었을 때는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미술이 무엇이냐 물으면 아름다운 기술이라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미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제가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것이고, 그런 작품이라야 사람들에게 평화와 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개인적으로 요즘 건강이 좋지 않은데, 빨리 건강해져 좋은 작품들을 이전처럼 많이 그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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