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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온 마음을 쏟아내는 ‘김유례’ 시인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 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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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ive & prospective 37]

‘시’에 온 마음을 쏟아내는 ‘김유례’ 시인

부선(扶宣) 김유례(金裕禮)
1940년 4월12일 출생
2003년 경주문예대학 졸업
2007년 문예운동 신인상으로 등단
경주문협, 경북문협 회원, 행단문학 동인
2021년 첫 시집《오늘을 먹다》출간
2019년 문집《여든》출간

 

 

신문 연재소설이 나의 첫 문학책
어린 시절 저는 경기도 양평에서 한학을 공부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교육을 중요시 여기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빠들 세 분도 다 서울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인문학적인 집안은 아니었어요. 아버지께서 신문을 구독해서 보셨는데 제가 양평 읍내로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신문을 가져오며 배달부 노릇을 하였지요. 당시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보내고 더 이상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때라 혼자 중학교에 다니며 심심했던 저는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냇가에 앉아 신문을 열심히 읽었어요. 신문에 연재되던 소설이 제가 읽은 첫 문학작품들이었죠. 중학교에서 문예반 활동을 하고 등사지를 밀어 교지도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 결혼 후에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죠. 남편이 회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면 열심히 읽고 일기도 써보고 했지만 내가 글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남편 사별 후, 방황하며 시작한 글쓰기
1995년 가장 의지했던 남편과 사별을 하고 제가 방황을 좀 했어요.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해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환갑이 지나 수지침, 컴퓨터, 자동차 운전을 배웠어요. 컴퓨터를 배우니 다른 세상이 열리더군요. 인터넷을 통해 경주문예대학 학생 모집광고를 보고 당장에 전화해 63세 할머니도 갈 수 있냐고 하니 오라 해요. 막상 가보니 30대부터 50대까지 있는데 내 나이는 하나도 없더군요. 그래도 눈 딱 감고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어요. 교수님과 면담을 하며 책을 제대로 읽는 좋은 독자가 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속에 있는 것을 한 번 써보고 싶어 들어왔다 하니 교수님이 이것저것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런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 해온 과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제 나이가 많아 야단도 못 치는 것 같아 얼마나 무안한지 밤새 잠을 못자겠더라고요. 침대에 엎드려 밤을 꼬박 새서 손으로 뭔가를 끄적이며 이튿날 교수님께 가져갔어요.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며 “좀 써봤네” 하더군요. 저의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았어요. 저에게 시 쓰는 것이 성향에 더 맞으니 시를 써보라 권하시더군요. 시로 2007년 68세 등단하고, 2012년에 《오늘을 먹다》출간으로 문인협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산책과 일상 속에서 얻는 영감, 시로 길어내다
시에 대한 영감은 주로 산책을 하면서 얻고 또 일상생활과 가끔씩 세 며느리들을 보며 모티브를 잡아요. 어떤 날은 폭포수 같이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제일 많이 썼을 때는 하루 저녁에 7편을 쓴 날인데 7편 시 모두 버릴 것이 없었지요. 그렇지만 또 어떤 때는 일 년을 써도 시 한편 완성하지 못 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한 달에 몇 편 시를 쓰세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대답을 못해요. 많이 쓸 수도 있고 한 편도 못 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시 쓰는 것도 욕심을 내지 않고 써지는 대로 흐르는 대로 쓰려고 해요.
시를 쓰다보면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또 내 마음이 정화되고 쌓이는 것이 없게 되죠. 막내며느리와 18년째 한집에서 살고 있지만, 며느리가 어머니가 기분 나빠하고 화내는 것은 한 번도 못 봤다 해요. 시로 다 쏟아놓기 때문에 실제로도 화가 나지 않아요.(웃음) 


가장 애정이 가는 시(詩) ‘고향 가는 길’
초창기에 쓴 ‘고향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어요. 70세가 안되었을 때인데 그때는 이제 내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본향으로 돌아가는 마음을 담아낸 시랍니다. 독자들을 위해서 제목은 ‘고향 가는 길’로 지었지만요. 이 시는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어 노래로도 나왔어요. 그래서 어디를 가면 신청곡을 청하듯 저에게 “선생님! 고향 가는 길 낭송 좀 해주세요.”라고 해서 낭송도 많이 했답니다. 


고향 가는 길

 

아주 힘차게
걸어서 가고 싶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분을 바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려도 좋을 게다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상관없다
세월의 한 자락 뒤집으면
눈부시게 하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시는
젊디젊은 내 어머니
으스러지도록
그 가슴에 안기고 싶다.


그리움으로 불타던 가슴
긴 밤을 지새우던 매운 시간들
이제는 모두 잊어야 한다
애틋한 정일랑 곱게 접어서
따뜻한 가슴에 담고 가야지.


 

시 낭송은 나의 감성을 담아내는 것
어떤 시를 낭송할지 정하고 나면, 먼저 그 시를 완전히 외웁니다. 낭송하는 시에 몰입해서 내 시로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낭송하는 법칙도 필요하지만,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까 생각하며 목소리를 통해 내 감성으로 담아내는 것이죠. 그리고 정확한 발음, 안정적인 목소리, 어떤 무대에서도 떨지 않는 여유를 가진다면 좋은 시 낭송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본의 아니게 학교에 다니며 이런 면들이 준비되었던 것 같아요. 외우는 것은 지금도 잘하는데 영어암송,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시 암송, 180구절 성경암송 등을 완벽히 해 내었고, 앞에 서서 발표를 잘 했던 터라 아무리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는 담력이 생긴 것이죠. 무엇보다 제가 직접 시를 쓰니 저자의 감성을 잘 전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시낭송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한답니다. 


늙을 시간도 없네요!
전 꿈이 특별히 있지는 않아요. 요즘 스마트 폰을 배우면서 ‘스마트 폰 활용 지도사 자격증’도 땄어요. 배우다 보니 배울 것들이 무궁무진 하더라고요. 올해에는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을 곁들여 시집을 내보려고 해요. 
또 코로나 전부터 오랫동안 한 문화센터에서 요청한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부담 갖지 말고 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 달라 하는데 제가 웃으며 농담 삼아 말했어요. “이렇게 저에게 자꾸 나오라 하면 나는 언제 늙냐고요.” 노인이 되면 치매 걸릴까 두려워하는데 저는 치매 걸릴 시간도 없는 것 같아요. (웃음) 


김유례 시인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아이고 이 나이에”라고 하더군요. 나이가 어때서 이런 말을 하느냐는 겁니다. 부드러운 말에 조용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 시인이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살면서 바보가 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생각하니 어디가나 남녀노소가 자기를 반겨주더라고 하셨거든요. 삶을 나누며, 대접받을 생각은 접고, 베풀며 사시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따뜻한 인터뷰였습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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