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르치는 즐거움을 선사한10반 꽃봉오리들에게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9. 21:41

본문

가르치는 즐거움을 선사한
10반 꽃봉오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 학교를 옮기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나? 그것부터 살피게 되었네.”
나를 아끼던 교장선생님께서 당신의 경험담을 말씀하시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승진 준비를 해놓으라고 조언하시던 게 생각나는구나. 더 나이 먹으면 학생들도 꺼릴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말씀이셨지. 선생님도 이번에 학교를 옮기면서 이 말씀이 쟁쟁했단다. 나를 반기지 않으면 어쩌나,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맡아 쩔쩔매면 또 어쩌나, 한걱정이었지. 이십 년만 근무하면 그 다음부터는 ‘덤’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 따라 요구하는 삶의 무게도 보태져 꾸역꾸역 일을 헤쳐나가야 해서, 선뜻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단다. ‘덤’마저도 더 달라고 보채는 형국이었지. 
그리고 너희를 만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사소한 이야기도 크게 공감하는 너희를 보면서 이것이 하룻밤 꿈이면 어쩌나 밤잠을 설쳤단다. 어느 날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이 부임했다고 하면서 내가 맡은 과목과 업무를 다른 분이 맡아야 하니 내놓으라는 꿈까지 꿨단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내가 얼마나 너희를 가르치는 일에 애착을 갖는지 깨닫게 되었단다.


십 반 꽃봉오리들아! 기억나니? 어느 봄날 부용천을 산책하며 쬐던 햇살과 아이스크림을?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읽고 난 뒤 모둠별 발표를 하고, 책 표지를 만들고, 서평 작성 뒤 발표하던 그 순간들이? 선생님에게는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시간이었단다. 
‘아, 이 아이들에게 이런 재능이 있다니, 내가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니!’ 발표 시간마다 뿌듯함으로 혼자 보기 아까워 영상도 찍고, 다른 반 선생님도 초대하면서 자랑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생각에 가슴이 찡하다

.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하지만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한단다.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고. 혹자는 ‘여우의 신포도’라고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난 나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하면서 이쪽 강줄기로 들어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단다. 결국에는 굽이굽이 바다로 흘러들어 거기에서 만나니 걱정할 것이 없었지! 바다란 목적지보다 흘러가는 강줄기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물풀, 물고기들과 어울리며 알싸하게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짜릿한 삶이 아니겠니? 그러니 얘들아! 선택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선택을 해도 충일한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으렴!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을 메리 올리버의 시로 대신하마. 


올해에도 너희 앞에 놓인 과제를 정성 다해 풀길 바라며 이만 줄인다. 선생님의 사랑을 담아. 

 

아침산책 - 메리 올리버 (미국, 1935~2019)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의정부시 효자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