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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과 같은 영화를 만드는 人 - 민병훈 감독

2018년 3월호(제 10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3. 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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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이야기]

유기농과 같은 영화를 만드는 人

민병훈 감독


  영화 ‘황제’를 연출한 감독, 사회문제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유기농과 같은 영화를 통해 치유함으로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영화감독 민병훈을 만나다.


민병훈 감독 프로필


■ 러시아 국립영화대학교 촬영학과 졸업

■ 1998년 데뷔 ‘벌이 날다’

■ 2007년 ‘포도나무를 베어라’, ‘괜찮아 울지마’

■ 2012년 ‘터치’, ‘아! 굴업도’, ‘가면과 거울’

■ 2017년 ‘황제’

■ 1998년  토리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 비평가상, 관객상 

     테살로니카 국제영화제 은상 수상

■ 1999년  러시아 아나파 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독일 코트부스 국제영화제 예술공헌상과 관객상



Q) 영화 ‘황제’를 만들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위험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영화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 어떤 동기를 가지는 것은 ‘단선적’이지는 않고 복합적이거나 의외의 요소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모여 추락하는 폭포가 되듯이, 복잡한 삶의 기로에 존재하는 여러 사안들이 어느 순간에 무언가와 마주쳤을 때 폭발하는 하나의 ‘영감’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황제라는 영화’도 같습니다. 그 당시 황제라는 음악이 엄청 좋아서, 아니면 그 음악이 나의 심장을 꿰뚫어서 이 영화가 나에게 왔다기보다는, 제가 가진 고민들이나 영화적인 숙제가 있었을 때 마침 ‘황제라는 음악’을 만난 것이니까요.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자 감독

  저는 영화를 만들려는 목표가 선명한 사람입니다. 즉 재미와 평안함과 오락을 주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영화라면 다른 분들도 많이 할 수 있으니까요. 삶의 모순을 보며 저는 거꾸로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질 뿐 아니라, 감독인 제 안에 있는 영화에서도 그 질문을 회상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저의 궁극적 목표이지요. 그래서 제가 만든 영화가 어렵다고 하거나 불편하다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불편함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어서 그 삶이 치유가 되며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팝송이나 발라드를 들으면 명쾌하게 다가오지만, 대체로 10번 이상 듣지는 않습니다. 반면 클래식은 재미없고 어렵다고 하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도 어른이 되면 다 잊어버리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이라는 음악이 주는 원초적 힘이 분명히 있다고 아주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을 치유하는 힘, 자기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힘,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힘이 아닐까요? 베토벤이 고통스럽게 써내려갔던 곡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그런 연주회장에 가서 그런 연주자를 보았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영화 ‘황제’를 만들게 된 것이지요. 이 과정은 저에게 참신한 도전이자 영화의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음악회에 ‘베토벤’이 있었고, ‘김선욱’이 있었으며, ‘황제’가 있었던 가운데, 나의 간절함이 운명처럼 이들을 모두 맞닥뜨렸던 겁니다. 그러자 저의 영화적 영감이 즉시 발동하여 그 운명을 재해석하게 된 겁니다. ‘젊은이들의 고뇌, 인생의 우울증, 자살’ 등의 매우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한 삶의 치유, 회복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동기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 유튜브 - 2017년 영화 황제 2차 메이킹 필름(감독 코멘터리 ver.). 피아니스트 김선욱 주연 >


Q) 영화에 등장한 죽음을 생각하는 ‘세 명의 젊은이’와 ‘황제’는 대조되는데 어떤 점을 염두에 두셨나요? 

  그런 점을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조점들은 항상 경계선 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 경우의 수들이 있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고자 할 때도 경우의 수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 경우의 수를 아주 깊게 혹은 간단하게 생각은 해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쉔베르크’의 음악을 들었다면 아마 ‘쉔베르크’였을 것입니다. 만약 연주가가 ‘김선욱’이 아니라 ‘예수아’라면 그녀가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의미의 형태

  그러나 영화 연출자에게 중요한 것은 ‘영화의 색깔’보다는 ‘의미의 형태’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무슨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의 현실감이나 고뇌와 고민을 -민병훈 개인의 고민일 수도 있지만- 전달할 것인가입니다. 즉 우리 사회가 무슨 고통을 떠앉고 있는지를 영화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시대적인 흐름과 함께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위험한 형태는 ‘우울증과 자살’이라고 저는 진단합니다. 우울증과 자살은 서로 등껍질처럼 붙어 있는데, 그것이 만연한만큼 우리 시대가 우울해졌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상하게도 사회가 고도 성장할수록 더 우울해지는 것 같습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텅 비어 있다는 것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얼굴에도 쓰여 있으니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셈입니다. 연예인들이 화려할수록 자살자가 더 많아지며, 기업들이 잘 나갈수록 범죄가 더 많아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사회 속에 첫걸음을 떼는 젊은이들이 가진 심각한 고뇌라는 ‘의미의 형태’는 제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주제이지요. 물론 저에게 있어서 이런 생각들은 지금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고, 1998년도 첫 작품이후 데뷔 20주년이 되는 올해까지 계속 생각해오는 가운데 지금의 저의 작품들로 만들어진 겁니다. 


Q) 과연 그것이 음악으로, 영화로 치유되어질까요? 

  음악과 영화로 치유한다라고 말하기보다, 개인과 사회가 가진 고뇌가 서로 일치할 때 영화 연출자는 무언가 대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국가가 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감독인 제가 작은 대안이라도 주고 싶은 겁니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연주를 통해서, 또 운동 선수는 홈런을 치면서 희망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영화 감독은 감독대로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솔직하게 제기하고 이어서 소망을 가지기를 기대하는 겁니다. 물론 저는 의사도 영적 신부도 아니기 때문에 완벽한 치유를 제공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영화감독으로 현실 문제를 건드려서 이 영화를 본 단 한 명 혹은 몇 사람이라도 자신의 우울함을 해소한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인 연출을 한 것으로 여기는 편입니다. 


< 유튜브 - 2017년 피아니스트 김선욱 주연 영화 '황제' OFFICIAL TRAILER >


Q) 이 영화가 출품된 이후 얼마나 많은 분들과 ‘소통’하였는지요?

  다른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숫자입니다. 극장에서 상영되지도 않고, 저 자신이 IPTV(인터넷TV)나 온라인과 같은 통로를 원천적으로 막으며 그 쪽 시장을 거부하고 있다 보니, 양적으로 보면 저는 데이터에 없는 사람일 겁니다. 보통은 그런 양적인 것이 드러나야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사실 ‘소통 없는 사람’이고 저의 영화는 ‘소통 없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천만의 관객이 몰려드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대중적 소통’이 아니라 비록 작은 숫자의 사람이라도 ‘이 영화를 찾고, 보고 싶어하는 분들과 직접 만나 눈으로 보고 만나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으며 대화하는 형태의 소통’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이 어려워하기도 하고 난해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유행이 없는, 그래서 언제든 찾아 볼 수 있는 영화

  영화를 ‘찾는 사람’과 ‘보아야할 사람’이 일치되었을 때가 시작이라고 보는, 저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 영화는 유효기간이 없는 영화니까, 올해 봐도 내년에 봐도 되니 전혀 유행에 따르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유행이 없듯이 이 영화도 유행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시작해서 내년 혹은 후년에도 계속 찾는 사람이 있고 또 찾게 만들어준다면 그것이 훨씬‘의미있는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피상적으로 재미있거나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수 있지만, 가치있는 곳에서 가치있게 소통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찾아가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장소는 어떤 곳이던(학교, 집, 지하철, 별장, 숲)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서 필요한 분들이 보도록 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 그렇다면 영화의 대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점을 생각하는 영화를 저는 제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관객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영화제작 방식과 목적을 변화키실까를 저울질하는 순간 제가 불행해질 것 같기 때문이지요. 저는 단지 영화 창작자로서 만드는 것에 전념을 다할 뿐이고 그런 영화 자체의 가치에 집중해야지, 제 영화의 관객들의 저변이 넓어져 저의 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제 스스로 모순에 빠질 것 같거든요. 시민들과 함께 행복한 문화를 같이 만들려는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를 제작하는 것과 같은 원리가 아닌가요? ‘이런 신문을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원리적이고 실제적인 고민을 했을까’라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현실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집중할 것은 이 글의 질(質), 즉 이 신문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름다운 글을 전달함을 통해 행복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자만할 필요도 또 비관할 필요도 없이, 묵묵히 자기가 가는 더 의미있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오늘이 조금 어둡다 해도 내일은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 유튜브 - THE EMPEROR. 찾아가는 영화 PROJECT. 2017 >


Q) 이렇게 제작을 하다 보면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요?

  ‘어려운 점’보다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계에 ‘협동조합’과 같은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중가수들에게 팬클럽이 있는 것처럼 영화에도 ‘팬클럽’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제 영화를 만드는 것을 지지한다면, 이 영화를 같이 할 수 있는 ‘후원자들’이 필요합니다. 후원자들이 꼭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봐주고 만나주는 사람들이 이루는 ‘클럽 문화’가 필요한 겁니다. 가치 있는 영화들의 제작이 지속적으로 가려면 이런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하시듯이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가 ‘영화 이야기’라는 하나의 섹션 혹은 컬럼을 통해 민병훈 감독의 차기작을 소개함으로 영화제작 과정에 동참하는 겁니다. 재정적 후원자로, 격려하고 박수치는 응원자로, 현장에 함께 동참해 주시는 분들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백명, 이백명, 삼백명,‘오백명’이 된다면, 제가 굳이 멀리 안가도 얼마든지 이런 분들과 깊이 소통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형태를 꿈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Q) 감독님의 작품에 대해 관객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 관객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저는 영화가 ‘음식’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혼의 음식’으로 말이지요. 사람들이 음식도 나쁜 것만 계속 먹지 않는 것처럼 영혼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오락 영화만 찾지 않는 것처럼 영혼도 몸이랑 똑같습니다. 오락 영화 얼마든지 널려 있습니다. 다만 해가 없는 ‘유기농 같은 영화’도 보라는 것이지요. 누구를 위해서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미술관을 즐겁게 가는 이유가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때문인 것처럼, ‘유기농 같은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이해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둘째 문제입니다. 그래서 1달에 1편, 적어도 6개월에 1편 정도의 예술영화를 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려는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저는 아예 극장에서는 상영을 안합니다. 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감독님 말이 맞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이런 거 봐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에게 제가 100편의 영화를 드립니다. 1주일에 1편이니 2년 치인 셈이지요. 2년 동안은 1주일에 1편은 보라는 거지요. 


Q) 그럼 영화의 평가에 대한 질문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었니?’라는 질문보다 ‘좋았니?’라고 해야 합니다. 소위 ‘천만 명을 돌파하는 영화’는 저에게는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에게는 재미있을 수 있지요. 다만 ‘재미있냐?’보다 ‘좋았냐?’ ‘감동 있었냐? ’‘뭐가 좀 다르냐?’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Q) 어릴 때부터 꿈이 영화 감독이었나요?

  어릴 때부터의 꿈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영화 감독이 꿈은 아닙니다. 하다 보니까 운명처럼 너무 좋아서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영화 감독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모자란 사람이 영화 감독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과분합니다. 그래도 나름 내 길을 가면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여기며 정성스럽게 만들어 갈 뿐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가요?라는 마지막 질문에 ‘약해지지마’라는 작품으로 찾아뵙겠다는 답을 들으면서 감독님의 건투를 빌었습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1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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